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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공 최경회 현감 선덕 추모비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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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논개 생가지 경내

    복원된 최경회 비각과 비석, 최경회 현감 옛 유허비

    충의공 최경회 현감 선덕 추모비명

    조선왕조 1592(선조 25) 4월 천인공노할 왜적의 침입으로 임진국난을 당하여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달려 있을 때, 우국충정의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최경회 현감은 1532(중종 27) 전남 화순현 삼천리에서 아버지 천부와 어머니 순창임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공은 젊은 시절 송천 양응정과 고봉 기대승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총명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학식과 무예가 뛰어나 일찍이 신유년(명종 16)에 생원 진사에 통과하고 정묘년(명종 22)에 문과에 등제 벼슬길에 올랐다.

    1574(선조 7)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옥구, 장수, 무장, 영암, 영해, 담양 등지에서 1590(선조 23)까지 현감 또는 부사로 재직하였으며 그의 훌륭한 인품과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임지마다 공을 칭송하는 선적비가 세워졌다. 1590(선조 23)에 모친상을 당하고 복중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복을 입은 채 문흥헌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어 화순, 능주를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키어 골자로 징표를 삼은 의병부대를 창설하여 군사를 이끌고 남원을 거쳐 장수 땅에 이르러 장계 도장평에 장대를 설치하고 의병 8백여 명을 강군으로 조련을 시키었다. 이때에 장수현감 당시 민며느리 송사로 인연을 가졌던 논개와 재회의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논개의 기동성 있는 뒷바라지로 장수를 거점으로 무주, 진안, 금산 등지의 왜적을 수없이 무찔러 재 너머 지레로 퇴각시켰으며, 공민왕이 그린 청산백운도를 되찾고 언월도를 빼앗았다.

    1592(선조 25) 105일 왜적 2만여 명의 진주성 일차 공격이 시작되자 공이 영남지방도 우리나라 땅이라며 지역적 차별성을 극복하고 김시민 진주 판관을 돕기 위하여 정예된 의병을 이끌고 운봉, 함양, 산음 등지에서 뛰어난 전술로 왜적을 무찌르고 외곽인 지례, 거창 두 요충지대를 차단하여 적의 공격을 막아 호남과 경상우도를 전란으로부터 보전케 하고 전세를 승리로 이끄는 공을 세웠다. 공의 이러한 빛나는 전공을 선조께서 가상하게 여겨 15934월에 경상우병사로 제수를 하게 되었다.

    왜적은 다시 1593(선조 26) 619일 일차 진주성 싸움의 패전을 설욕하려고 십만 대군을 집결, 진주성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2차 진주성 공격을 시작하였다.

    최 병사는 창의사 김천일과 더불어 충의를 맹서하고 성을 사수하고자 진주성으로 입성하였다. 이때에 논개는 낭군을 따라 풍천에서 진주에 도착하여 진주성 싸움에 참전하였으며 군관민 6만여 명이 아흐레 동안 밤낮 한 덩어리가 되어 필사적으로 왜적과 싸웠으나 조총이란 신무기와 중과부적으로 끝내 성은 함락당하여 왜적의 난입으로 목불인경의 참상이 벌어졌다.

    최 병사는 김천일, 고종후와 같이 남장대에 모여 성을 지키지 못한 자격지심에 자결을 결심하고 임금에게 북향 사배한 후, 절명시로 촉석루 위 삼 장사는/술 한 잔을 들고 웃으며 남강을 가리키노라/ 남강물 도도히 흘러가노니/ 저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이 혼도 죽지 않으리.’라는 시 한 수를 남기고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를 가상히 여겨 좌찬성을 증직하고 충의공으로 시호를 내렸다.

    논개는 난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성이 무너진 처참한 상황에서 낭군과 나라의 원수를 갚을 것을 결심하고 칠월칠석날 기생으로 가장, 왜적 승전연에 참석, 왜장 모곡촌육조를 의암으로 유인하여 강하게 나꾸어 챈 다음 남강에 투신, 호국의 연신으로 산화하였다.

    최 현감이 무장현감으로 전임 후 1580년경에 장수 재직 시 선정을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수 현청 앞에 군민들이 선덕비를 세웠으니 세월에 마멸되어 희미하게 사라져 감을 안타깝게 여겨 이곳에 논개 생가를 확장 이전하면서 옛 선덕비문을 더듬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추모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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