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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전(義妓傳)≫
작성자
안숙(安櫹)
작성일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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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전(義妓傳)≫
만력(萬曆) 계사(癸巳) 6월 그믐에 왜적(倭賊)들이 진주성(晋州城)을 함락시켰다. 성이 함락되자 다시 어떻게 할 사람이 없었는데 논개(論介)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국사(國事)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하구나. 허나 그냥 죽는 것은 아무 보탬이 없으니 어찌 구덩이에 빠져 죽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겠는가?’하고 화장(化粧)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의암(義巖)에 올라 가야금을 타며 노래를 하였다. 적의 우두머리가 좋아하며 다가오니 마침내 웃으며 맞이하여 그와 더불어 춤을 추웠다. 춤이 어느 정도 이르자 적을 끌어안고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 모든 적들이 크게 놀라 그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미칠 수가 없었다. 적들은 장수가 죽자 크게 혼란되어 달아나고 무너져 성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선비들은 독서(讀書)를 통해 의리(義理)를 배우고 익혀서 평소 담론(談論)을 할 때마다 충신(忠臣)과 열사(烈士)가 될 것을 자부(自負)하지 않은 때가 없건만 하루 아침에 사변(事變)을 만나서는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배회(徘徊)하며 결연(決然)치 못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사람이 종종 있다. 저 무지(無知)하고 한결같이 천(賤)한 창기(娼妓)가 사직(社稷)을 걱정하고 강상(綱常)을 부지(扶持)하였다. 미소(微笑)를 머금은 채 강가에 임(臨)하여 죽음을 귀가(歸家)하는 것처럼 애석(哀惜)해 하는 뜻도 돌아봄도 없이 맞이 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의 기묘(奇妙)하고 비밀스런 계책(計策)은 다른 사람들의 뜻과 생각이 미치지 못한데서 나와 승승장구(乘勝長驅)하는 적의 우두머리를 죽였으니 패잔(敗殘)하여 상처(傷處)만 남은데에 사기(士氣)를 북돋아 주었다. 작은 한 목숨을 버림으로써 남방(南方)의 수백년의 근기(根基)를 회복(回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앞 옛 역사(歷史)에 일찌기 있었던가? 나는 이경(李璥)과 백사림(白士霖)의 무리들을 초청(招請)하여 이를 일러주고자 한다.

萬曆癸巳六月晦日賊陷晋陽城 城陷而無復可爲者 論介 喟然 曰國事至此生不如死然徒死無益 豈爲溝瀆之諒哉. 以凝粧盛服登義巖彈琴而歌酋長喜而來 遂嫣然而迎與之舞舞將半抱賊投江而死. 諸賊大驚欲救之已無及矣. 賊喪其帥大亂奔淸城復全. 嗟乎. 士讀書講明義理平居談論莫不自許以忠臣烈士. 而及一朝遇事變未免徘徊 於死生之間不能決然於能魚之分 卒爲天下後世笑者種種焉. 彼無知一賤娼之能憂社稷扶綱常. 含笑臨江視死如歸了無讖毫顧惜之意. 而又其奇謨秘策出於人意慮不到 殲賊魁於乘勝方張之際 振士氣於敗衄殘傷之餘 損一縷而爲南方數百年 校復根基者. 此果前古史所嘗有者乎. 吾欲招李璥白士霖輩而告之

임금께서 이 내용을 들으시고 의기(義妓)의 정려(旌閭)를 세우라 명(命)하였는데 정려는 의암(義巖)의 북쪽 수십보(數十步) 거리에 있다. (上聞之 命立義妓之閭 閭在 義巖北數十步許)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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