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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소개
논개 관련 유적지
논개 유적지 진주지역
진주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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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사적 제118호
명칭
진주성(晋州城)
시대
조선시대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173,036㎡
지정일
1963. 1. 21
소재지
경남 진주시 남성동, 본성동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 : 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蒔敏 : 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여 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어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였다.
기록에 보면 1605년(선조 38)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진(鎭)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게 되었는데, 성은 자연 촉석루를 중심한 현 진주공원 일대의 외성과 현재의 성내동(城內洞) 주변 내성의 둘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 뒤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1607년 포루(砲樓) 12개를 증축하였고, 18년(광해군 10)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진주성을 대략 이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蒲,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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