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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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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유적지 함양지역
의암 주논개묘역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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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논개 묘역 전경

위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산 31번지
최경회 장군을 따라 진주성에 가서 용감하게 싸운 장수 의병들은 성이 함락되면서 살아남은 80여명이 야음을 틈타 진주성을 탈출하여 부근 산간에 숨어 유격전을 벌이던 중 최 병사와 제장의 죽음과 논개 부인의 장렬한 설욕의 순절을 탐지하고 시체라도 고향땅으로 같이 돌아가려는 충정에서 남강 하류의 수색작업을 개시하여 창원 지수목에서 최장군의 시체와 왜장을 껴안은 채 떠내려 온 논개부인의 시신을 한꺼번에 발견하기에 이르러 장장 150리길을 운상하여 안의현 서상면 방지리에 이르러 주씨문중(朱氏門中)과 장사 지낼 것을 타협하였으나 왜적의 추격과 보복이 두려운 주씨문중의 거절로 실의에 빠진 의병들은 삼남대로(三南大路)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아(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산 31번지) 최경회 장군을 위쪽에 논개부인을 아래쪽에 장사지내고 그리웠던 고향땅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근세조선 말엽의 장수의 석학이신 우재(愚齋) 오덕렴(吳德濂) 선생의 유고(遺稿) 경독재집(耕讀齋集)의 인물편

최경회장(崔慶會章)에 [최경회 장수현감 진주병사의 벼슬에 있었다. 임진계사의 난리 때에 진주에서 패전하고 살아남은 장수 의병이 최병사와 의암 주논개 부인의 시신을 거두어 운구하여 안의현 서상면 방지마을 당산 뒤쪽 골짜기에 묻었다 하더라.]

이러한 기록으로 또는 생존해서 고향에 돌아온 의병들이 후손에게 남겨준 설화는 대를 이어 장수고을에 전해져 오기에 1976년 오치황, 유기열(劉淇烈)이 고증을 더듬어 발견하고 문화공보부에 보고서로 제출됨으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순절한 후 382년 만에 발견된 두 분의 유택을 살필 때 실로 몸은 죽어도 충절의 영혼은 민몰되지 않음이 여기 증명되었으니 물결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들 혼백도 죽지 않는다.?는 최경회 장군의 임종 시는 헛된 것이 아님이 뚜렷이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묘역은 전북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방지마을 옆 속칭 ‘탑시기 골’에 있다. 1980년대 후반 함양군의 논개묘 성역화사업으로 봉분을 다시 만들고 비석을 세우며 주위를 정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묘의 규모는 높이가 1.2m, 직경이 5.4m, 길이 5.3m에 달하는 대형분묘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1년 후인 1593년 6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된 후 성 아래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날을 추모하고 충절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7월 7일을 기하여 유림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묘 위 측에는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되어 진주성에서 싸우다 순절하신 최경회 장군의 묘도 함께 있고, 주변에 반장의병추모비가 있으며 넒은 광장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의암주논개 반장 의병추모비​
의암 주논개반장의병추모비
남강의 시원인 여기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탑시골에
남강과 함께 푸르게 흐르는
찬란한 역사의 꽃 의암논개 묘 있나니

진주성 무너져 흩어졌던 의병들이
진양벌 지수목의 남강기슭에서
이제 막 원수갚아 햇살같이 웃음번진
열아홉 청춘의 의암논개 주검건져
한여름 3백리길 낮에는 왜병피해
사흘밤 이슬속에 총총히 반장하여
가신님의 고향 길목 의병들의 창의지인
덕유의 영봉아래 양지 바르게 묻었구려

이곳 함양은 천령의 옛 땅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대대로 살았거니,

밤 반장에 목숨건 의병선인들이시어

오늘 이 고을 군민들이 비하나 세우고
거룩한 충의를 삼가 추모하옵나니
민족의 애인으로 영원할 의암혼이
충효와 정절의 그때 모습 그대로
천령함곡 터전에서 전해지게 하소서

1989. 12.
함양군수 최락건



진주성 무너져 흩어졌던 의병들이 남강 기슭에서 논개와 수성장의 시신을 건져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반장하였다.
얕으막한 고개 넘어 논개의 고향땅 전라북도 장수군에 묻으려 했지만 금강으로 흘러가는 장수 땅의 물길에 영혼이 잠들 수 없었던지 원수를 껴안은 남강, 그 남강이 시작되는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묘소를 두고 후세의 풍수가들은 연화부수의 좌蓮花浮水之座(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자리)라는 명당이라고 한다.
바로 뒤에 부군인 최경회 진주성 수성장의 무덤이 보인다.
칠월칠석, 논개가 왜장을 안고 강에 뛰어든 그날이 되면, 유림(儒林)들이 차린 정부인(貞夫人) 격식의 추모제에 남녀 민초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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